
(사진=AFP)
[코리아위크] 인공지능(AI) 투자 확대로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급등하면서 자동차 업계에도 비상이 걸렸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와 같은 공급 부족 사태가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 속에, 업계 전반에서 ‘사재기’ 움직임이 나타날 가능성도 제기된다.
30일 니혼게이자이(닛케이)신문에 따르면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글로벌에서 자동차 산업을 담당하는 제레미 부샤르 분석가는 “자동차 업계에서 메모리에 대한 ‘패닉 구매’가 발생할 수 있다”며 “공급 부족에 대한 불안으로 필요 이상 물량을 선제적으로 주문하는 이른바 ‘두루마리 휴지 효과’가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는 메모리 가격이 지난해 4분기(10~12월) 40~50% 상승한 데 이어, 올해 1분기(1~3월)에도 비슷한 폭의 추가 상승이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불과 6개월 만에 메모리 가격이 두 배 이상 급등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가격 급등의 배경에는 빅테크 기업들의 대규모 AI 투자가 있다. AI 데이터센터와 서버용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가 급증하면서, PC·스마트폰·자동차 등에 사용되는 범용 메모리 가격까지 끌어올리고 있다.
엔비디아의 데이터센터용 그래픽처리장치(GPU)에 HBM이 필수로 탑재되면서, 마이크로소프트(MS)와 아마존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은 AI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엔비디아의 최첨단 GPU를 대량 구매하고 있다. 이에 따라 HBM 수요도 빠르게 늘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3개 기업이 9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카운터포인트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디램(DRAM) 공급 점유율은 SK하이닉스 34%, 삼성전자 33%, 마이크론 26%로 집계됐다.
문제는 이들 업체의 생산능력이 제한적인 상황에서, 수익성이 높은 HBM 생산에 공급이 집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HBM은 장기 대규모 계약이 대부분으로 안정적인 수익원이어서, 상대적으로 수익성이 낮은 스마트폰·PC·자동차용 메모리 공급이 뒤로 밀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AI 투자는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시장조사업체 델오로그룹은 2027년 전 세계 데이터센터 투자 규모가 2024년 대비 두 배 이상 증가해 1조달러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따라 자동차 업계의 긴장감도 높아지고 있다. 이미 메모리 가격 인상을 우려해 유통업체를 중심으로 재고 확보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차량용 반도체 부족으로 생산 차질과 출고 지연을 겪었던 만큼, 유사한 혼란이 재현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비용 부담 증가도 우려 요인이다. 자동차 한 대를 생산하는 데는 25~150달러 상당의 디램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스위스 UBS는 보고서에서 “메모리 가격 상승은 자동차 제조 원가를 끌어올리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메모리 가격 상승은 스마트폰과 PC 시장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IDC는 가장 비관적인 시나리오에서 올해 스마트폰과 PC의 평균 판매가격이 6~8%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닛케이는 “메모리 가격 상승은 소비자 구매 위축과 시장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며 “각국 정부가 반도체를 경제안보 전략 자산으로 인식하며 자국 내 생산 확대에 나서고 있는 만큼, 메모리 부족이 장기화될 경우 국가 간 반도체 유치 경쟁도 한층 치열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