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리아위크] 전세사기로 보증금을 떼일 위기에 놓였던 세입자들이 경매를 통해 집을 직접 낙찰받았다가, 이번엔 매년 수백만원에서 1000만원이 넘는 이행강제금을 부담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불법 용도변경 건축물이라는 이유에서다. 피해자들은 “사기를 당한 것도 억울한데, 국가가 또다시 책임을 묻고 있다”며 제도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서울 도봉구의 한 6층짜리 빌라에 거주 중인 40대 A씨는 2020년 9월 해당 건물 2층에 전세로 입주했다. 외관과 내부 구조는 일반 다세대주택과 다를 바 없었다. 싱크대와 난방시설이 갖춰져 있었고, 중개대상물 확인·설명서에도 실제 용도는 ‘주거용’으로 기재돼 있었다. 다만 건축물대장상 용도는 제2종 근린생활시설로 표기돼 있었다.
당시 분양사무소 직원과 공인중개사도 “주거용으로 사용하는 데 문제가 없다”고 안내했다고 한다. 그러나 2023년 9월, 해당 건물 소유주가 대규모 전세사기 조직과 연루된 사실이 드러났다. A씨는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받았지만, 보증금 2억2500만원을 회수할 방법은 쉽지 않았다.
결국 A씨는 지난해 7월 법원 경매에서 해당 주택을 직접 낙찰받았다. 보증금을 지키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안도감도 잠시, 같은 해 9월 구청으로부터 위반건축물 여부를 확인하겠다는 통지를 받았다. 해당 주택이 ‘근생빌라’에 해당한다는 이유였다.
‘근생빌라’는 원래 상가나 사무소 등 근린생활시설로 허가받은 건물에 취사·난방 시설을 설치해 사실상 주거용으로 사용하는 형태를 말한다. 겉보기엔 일반 빌라와 다르지 않지만, 법적으로는 용도 위반 건축물에 해당할 수 있다.
위반 건축물로 적발되면 소유주에게는 시가표준액의 10% 이내에서 이행강제금이 부과된다. 연 2회까지 부과될 수 있으며, 전용면적과 평가액에 따라 1회 수백만원에서 많게는 1000만원 이상이 부과되기도 한다.
A씨의 경우 1회 533만원, 연간으로는 1000만원이 넘는 금액이 예상된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는 “전세사기를 당해 어쩔 수 없이 낙찰받았을 뿐인데, 매년 거액의 강제금을 내야 한다니 막막하다”고 말했다.
국회 자료에 따르면 2020년부터 지난해 10월까지 근생빌라 형태로 개조됐다가 불법 건축물로 적발된 사례는 5968건에 달한다. 또한 전세사기피해자법 시행(2023년 6월) 이후 국토교통부가 인정한 근생빌라 전세사기 피해 건수도 지난달까지 1378건으로 집계됐다.
피해 규모가 적지 않자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전세사기 피해 주택이 위반건축물에 해당하더라도 매입해 공공임대로 활용하는 방안을 운영 중이다. 그러나 특별법 개정 이후 지난해 말까지 LH가 매입한 근생빌라는 34건에 그쳤다. 전체 피해 건수 대비 2%대에 불과한 수준이다.
지난달 28일 정부와 여당은 근생빌라 양성화 방안을 발표했다.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위반건축물 지위를 해제하겠다는 내용이다. 이행강제금을 5회 납부하고, 주차면수 확보 및 안전 기준을 충족하면 합법화가 가능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국회는 한시법 제정을 통해 약 1년 6개월간 시행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한다. 주차면수 확보 등 조건을 충족하기 어려운 구조가 많고, 이미 경제적 타격을 입은 상황에서 추가 비용 부담이 크다는 이유다.
특히 근생빌라가 위반건축물이라는 사실을 알고 매수한 경우에는 양성화 대상에서 제외하겠다는 방침도 논란이다. 전세사기 피해자 중 상당수는 불법 여부를 인지했지만 보증금을 지키기 위해 ‘셀프 낙찰’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영리 목적의 매수를 배제하겠다는 취지”라며 “전세사기 피해자의 경우 구제 대상에 포함할지 여부는 추가로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처음엔 집주인에게 속았고, 이후엔 제도에 막혀 두 번 울고 있다”고 호소한다. 보증금을 지키기 위한 선택이 또 다른 부담으로 돌아오는 구조 속에서, 실질적인 구제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