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숭의여자대학교 경영세무과 권오현 교수] 세금은 보통 숫자로 기억된다. 세율 몇 퍼센트, 공제 얼마, 과세표준이 얼마로 인식한다. 그러나 세금은 숫자뿐만 아니라 삶의 자리에 남는다. 집의 형태를 바꾸고, 사람의 외양을 바꾸며, 음식의 모양을 바꾸고, 때로는 지형까지 바꾼다. 역사 속 사람들은 세금을 가능한 피하는 선택을 하였다.
17세기 말 영국에는 '창문세(Window Tax)'라는 것이 있었다. 창문이 많은 집일수록 부유하다는 가정(창문이 많으면 난방효율이 떨어져 난방비를 더쓸테니 부자다라는 가정) 아래, 창문의 개수로 세금을 매겼다. 그러나 사람들은 세금을 순순히 내는 대신 창문을 벽돌로 막아버렸다. 아예 처음부터 창문을 줄여 집을 짓기도 했다. 지금도 영국의 오래된 건물을 보면 벽돌로 채워진 창문의 흔적이 남아 있다. 환기도 채광도 포기한 채 세금만은 피했던 그 선택들이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건물의 외벽에 고스란히 새겨져 있는 것이다.
오늘날 파리를 상징하는 저 우아한 지붕선도 알고 보면 세금과 무관하지 않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건물의 층수와 높이에 따라 과세와 규제가 달라졌다. 사람들은 불이익을 피하면서도 공간을 넓힐 방법을 찾아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망사르 지붕(Mansard roof)'이다. 경사를 두 번 꺾어 안쪽에 다락 공간을 넉넉히 확보하는 방식인데, 다락은 일반 층과 달리 취급되어 과세상 이점을 누릴 수 있었다. 오늘날 파리의 낭만적인 다락방 풍경은 순수한 건축적 취향인 동시에 납세자의 오랜 본능이 빚어낸 형태이기도 하다.
세금은 거리의 건물만이 아니라 사람의 얼굴에도 흔적을 남겼다. 17세기 말 러시아의 표트르 대제는 서구화를 밀어붙이면서 귀족들의 긴 수염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그 억제책 가운데 하나가 수염세였다. 수염을 유지하려면 일정한 세금을 내야 했고, 납부한 이들에게는 동전 형태의 표식이 지급되었다고 전해진다. 표식을 목에 걸거나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 수염을 기를 자격이 생기는 셈이었다. 세금이 외모라는 가장 사적인 영역에까지 손을 뻗었고,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얼굴 풍경도 그만큼 달라졌다.
한국에도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가 있다. 따로국밥이다. 국과 밥을 한 그릇에 말아 내는 대신 따로 담아 내는 방식인데, 그 유래에 대해 여러 설이 있다. 그중 하나가 세금과 얽혀 있다. 음식 가격이 일정 기준을 넘으면 소비세 과세 대상이 되던 시기, 국과 밥을 각각 따로 팔면 한 품목의 가격이 기준 아래로 내려가 세금 부담을 피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엄밀히 검증된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가 오래도록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다는 사실 자체가 흥미롭다. 세금을 피하려는 본능이 음식의 형태마저 바꿨다는 상상이 어딘지 모르게 퍽 그럴듯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일본 가고시마 지역에는 '가쿠시다(隠し田)', 숨겨진 논이라는 말이 전해진다. 에도 시대에는 쌀 생산량을 기준으로 세금을 부과했다. 농민들은 세금을 줄이기 위해 장부에 올리지 않은 논을 산골짜기나 숲 안쪽에 몰래 개간했다. 관리의 눈에 띄지 않도록 일부러 깊숙한 곳에 만든 논이었다. 세금을 피해 깎아낸 산비탈 어딘가에 아무도 모르는 논이 조용히 익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영국에서는 창문을 막았고, 프랑스에서는 지붕을 꺾었다. 러시아에서는 수염을 깎았고, 한국에서는 국밥을 나누어 냈으며, 일본에서는 논을 숨겼다. 시대도 다르고 나라도 다르지만 패턴은 같다. 세금이 생기면 사람들은 반응한다. 그 반응이 쌓여 건물의 외벽이 되고 지붕선이 되며,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얼굴이 되고, 밥상의 형태와 산속의 지형이 된다.
세금은 숫자로 만들어지지만, 그 결과는 전혀 다른 형태로 남는다. 지금 우리가 보고 먹고 걷는 일상의 풍경 어딘가에도 세금의 흔적은 조용히 새겨져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