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자문 | 이선자 (사단법인 한국 내방가사보존회 이사장/안동 내방가사 전승보존회장)
시집온 날부터 시작된 삶은, 곧 ‘떠나온 곳’을 더욱 또렷하게 만든다.
내방가사에는 유독 ‘친정’을 향한 그리움이 자주 등장한다.
그리움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돌아갈 수 없는 시간과 관계를 향한 기록에 가깝다.

■ “부모형제 생각하니 눈물 먼저 난다”
내방가사 속에는 친정을 떠올리는 순간들이 반복된다.
“부모형제 생각하니 눈물 먼저 난다. 보고 싶다 말 못하고 속으로만 삭이네”
이 구절에는 두 가지 감정이 동시에 담겨 있다.
‘그리움’과 ‘참아야 하는 마음’이다.
친정은 단순한 고향이 아니라 자신이 ‘나로 존재할 수 있었던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 왜 ‘그리움’은 더 커졌을까
조선시대 여성에게 시집은 새로운 시작이었지만, 동시에 기존 관계와의 단절을 의미했다.
쉽게 오갈 수 없는 거리, 자유롭게 표현할 수 없는 감정, 그리고 ‘며느리’라는 역할에 대한 압박까지.
이런 환경 속에서 친정은 점점 더 멀어지는 공간이 아니라 오히려 더 또렷해지는 기억으로 남게 된다.
갈 수 없기 때문에 더 선명해지는 것. 내방가사 속 친정은 그렇게 존재한다.

■ 말할 수 없어서, 더 깊어진 감정
중요한 건 이 감정이 쉽게 드러날 수 없었다는 점이다.
시집에서의 삶 속에서 친정을 그리워하는 감정은 때로 ‘참아야 할 것’으로 여겨졌다.
직접 말할 수 없었던 마음은 결국 글로 향한다.
내방가사는 그렇게 ‘표현되지 못한 감정의 통로’가 된다.
누군가에게 보내는 편지도 아니고, 공식적인 기록도 아닌, 오직 스스로를 위해 남긴 문장들.
그 안에서 친정은 현실의 공간이 아니라 마음을 지탱하는 기억으로 자리 잡는다.

■ 지금의 우리에게도 남아 있는 감정
낯선 환경에서 문득 떠오르는 익숙한 사람들, 돌아갈 수 있지만 쉽게 돌아가지 못하는 관계,
그리고 마음속에만 남겨두는 그리움.
내방가사가 지금도 읽히는 이유는 그 감정이 여전히 현재형이기 때문이다.

사단법인 한국 내방가사보존회 이사장이자 안동 내방가사 전승보존회를 이끌고 있는 이선자 회장은 내방가사 전승·교육·확산에 힘써온 인물이다. 지역에 머물던 전통문화를 전국적 문화 자산으로 확장하는 데 기여해왔으며, 경창대회와 전수 활동을 통해 세대 간 문화 계승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
